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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씩 덜 먹은 술이 잠을 깨우는 새벽이 있다. 술이 깨는 듯, 밤이 길어지는 날에는 자주 무언가로 허기를 채우려 한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입이 심심한 것도 아닌데 자꾸 밀어 넣는다. 더부룩한 속과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아직도 한참 남아있는 새벽이 무심하기만 하다. 건강하게, 또 건강하게 산다는 건. 모자르게 술을 먹고도 깊은 잠을 자면서 이 새벽이 주는 빈곤에는 관심없는 생활일지도 모른다. 내 가난함에 대하여 이렇게 뜬 눈으로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오면 어쩔 땐 믿기 어려울 만큼 힘들다. 이 시간에는 그 어떤 건설적인 걸 해보려 해도 손에 힘이 빠진다. 스도쿠도 저리 밀어버리고, 투닥투닥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이곳에 글을 남기는 정도겠다. 백석이 노래하던 가난함은 이런 것이었을까. .. 더보기
PAPA 어른들한테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 사랑받고 자란 티가 풀풀 난다고. 특히나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나를 볼 때 마다 그 소리를 했다. 정말 볼~ 때마다. 그래요. 맞지요. 나는 사랑받고 자랐고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어젯밤에 본가에 와서는 생활중이다. 고작 하루 반있다 가는 방랑객에게 밥이라도 한끼 제대로 먹이자며 굳이 온 가족이 저녁에 시간을 내어 다같이 식사를 하기로했다. 밥먹으러 나가기 전에 아부지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ㅡ이젠 집으로 안들어 올 거냐구. 계속 이렇게 밖으로 나가 생활하는 게 좋냐구. 원한다면, 정말로 몇시에 들어오던 무얼 하던 밥을 먹었건 안먹었건 터치 하나도 안할테니 집에서 출퇴근 하면 안되겠냐구. 당신은, 정말로 나 어릴 적에 당신이 했던 그 막말들.. 더보기
외로움 *엊그저께 얘기다. 한 주간, 대구에 가서 와글와글 사람들과 지내다가 그냥 갑자기 뚝 여기 혼자, 서울, 이 방에 떨어졌다. 내 모든 지인들이 엄지척 하고 인정할 만큼 외로움을 잘 모르는 나지만, 대구에서 출발하는 순간부터 차가울대로 차가워져있을 내 방바닥과 그 방 공기가 참 겁이 났다. 그리고 터덜터덜 걸어들어와 문을 열었는데 훅ㅡ, 너무 외로웠다. 냉골이 되어 있는 방바닥이 내 정서적인 온도까지 낮출 줄이야. 따뜻한 밥이 먹고 싶어서 보일러를 켜놓고 마트를 가서 햇반과 계란과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샀다. 포실한 밥에 버터와 간장을 비비고, 구운 햄과, 계란 후라이를 먹으면 기분이 정말로 나아질 것 같았다. 맥주가 에피타이저, 아이스크림이 디저트인 완벽한 식단을 세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햇반을 데울 물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