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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외로움

*엊그저께 얘기다.

 

 

한 주간, 대구에 가서 와글와글 사람들과 지내다가 그냥 갑자기 뚝 여기 혼자, 서울, 이 방에 떨어졌다.

 

내 모든 지인들이 엄지척 하고 인정할 만큼 외로움을 잘 모르는 나지만,

대구에서 출발하는 순간부터 차가울대로 차가워져있을 내 방바닥과 그 방 공기가 참 겁이 났다.

그리고 터덜터덜 걸어들어와 문을 열었는데 훅ㅡ,

너무 외로웠다.

냉골이 되어 있는 방바닥이 내 정서적인 온도까지 낮출 줄이야.

 

따뜻한 밥이 먹고 싶어서 보일러를 켜놓고 마트를 가서 햇반과 계란과 맥주와 아이스크림을 샀다. 포실한 밥에 버터와 간장을 비비고, 구운 햄과, 계란 후라이를 먹으면 기분이 정말로 나아질 것 같았다. 맥주가 에피타이저, 아이스크림이 디저트인 완벽한 식단을 세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햇반을 데울 물을 끓이려다 말고, 방이 데워지는 사이에, 내가 켜둔 불빛이 사람 사는 집의 온도를 만들어내는 동안, 또 따뜻한 밥을 상상하는 내내, 외로움이 멀끔히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더듬더듬 그것이 어디 있었던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면서 디저트 삼았던 아이스크림을 제일 먼저 까먹고는, 밥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산다는 건 그냥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어떨 땐 죽을만큼 아둥바둥대기도 하지만. 오늘은 아무렇지 않게 잠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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