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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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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덜 먹은 술이 잠을 깨우는 새벽이 있다. 술이 깨는 듯, 밤이 길어지는 날에는 자주 무언가로 허기를 채우려 한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입이 심심한 것도 아닌데 자꾸 밀어 넣는다. 더부룩한 속과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아직도 한참 남아있는 새벽이 무심하기만 하다. 건강하게, 또 건강하게 산다는 건. 모자르게 술을 먹고도 깊은 잠을 자면서 이 새벽이 주는 빈곤에는 관심없는 생활일지도 모른다. 내 가난함에 대하여 이렇게 뜬 눈으로 버텨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오면 어쩔 땐 믿기 어려울 만큼 힘들다. 이 시간에는 그 어떤 건설적인 걸 해보려 해도 손에 힘이 빠진다. 스도쿠도 저리 밀어버리고, 투닥투닥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이곳에 글을 남기는 정도겠다. 백석이 노래하던 가난함은 이런 것이었을까. 그도 이 가난함을 몸에 이고 마음에 지고 살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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