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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빛들(2010~11)

바보배 Das Narrenschiff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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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배 Das Narrenschiff 이야기


 

 

 

 

 


 유럽 문화사 중 문자 이야기를 잠깐.


인간이 명사에 대해서 개념적인 사고를 하게 되고, 분석하고 관찰하는 과학적 사고를 하게 된 것에는 문자의 발달이 큰 요인이다. 최초의 그림 문자인 픽토그래픽은 있는 그대로를 그려서 표현한 문자였고, 그것이 발달하여 한자 같은 상형문자로, 더 발달하여 모양을 담지 않은 소리 중심의 표음문자가 되었다. 그림 문자를 보고 그 닮은꼴을 떠올리던 단계에서, 소리 나는 선 문자를 보고 개념을 떠올려 이해하는 단계로 발전해온 것이다.


이 문자의 발달이 왜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미쳤을까. 표음문자의 발달로 과거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실제 사과를 <제1의 현실>로 받아들이고 글자로 적힌 '사과'를 또 다른 <제2의 현실>로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사과를 진짜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과'라는 단어를 보고 우리가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개념이 진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개념화한 완전체를 '이데아'라고 하는데, 이데아의 존재를 통해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그 속성을 이해하고 그것을 정의해서 인지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개념적이고 과학적인 인지능력은 인간이 사물과 현상들을 분석하게 하고, 정의 내리게 하고, 법칙이나 범주화하려고 하는 성격을 발달시키게 되었다. 긍정적인 평가로는 이런 논리적인 사고가 과학의 발달과 생활의 편리를 가져왔다고 얘기한다. 반면, 부정적으로는 이로 말미암아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을 잃었고, 물질 중심이나 과학 중심의 사회를 형성했으며, 이 세상에 인류의 파국을 부르는 전쟁을 불러왔고, 소외를 만들고, 존엄성을 무시하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길고 장황한 문자와 사고에 관한 설명 속에서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학적 사고가 낳은 <광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고대 사람들은 <제2의 현실>인 과학적 사고를 신뢰했다. <제2의 현실>은 정확하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이해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공통의 이해 '이성'을 요구했다.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동일성에 근거한 정답을 만들어버렸다. 각자의 이데아가 정답에 비추어 정상비정상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이성적 사고가 모자란 사람, 남들과 조금 다른 이데아를 그린 사람은 비정상의 취급을 받게 되고, 그들은 <광인>으로 구분되었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심지어 그 미치광이들을 모아 목적지 없이 배에 태워 바다로 보내버리는 문화를 형성했다.


덧붙이자면, 근대에 와서는 차마 사람들을 목적지도 없이 바다 위로 띄워 보낼 수 없어 그들을 모아 감금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정신병원'의 기원이 된다고 한다.


-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배 (원제: Das Narrenschiff)는 독일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바보배>에 실린 바보, 광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당시 사회, 문화, 법률제도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책이다. 바보들을 태운 배가 출항하는 것을 시작으로 바보들만의 세상을 찾다가 끝내는 난파되고 마는 내용이 담긴 교훈시다. 무려 100여 명의 각기 다른 바보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온갖 어리석음을 비꼰다.





하지만 세상에 원래 '정상'이란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광인 취급을 받아 바보배에 실려 떠난 사람들은, 과거 상형문자의 시대에서는 일반 정상인들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볼 줄 아는 특별한 사람들로 인정받았다. 그들은 예술가였고, 예언가였다. 그들의 이성을 뛰어넘는 판단과 사고는 중세에 들어와, 바보의 생각이 되었다. 비이성적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비정상으로 취급받아야 했다.


브란트의 <바보배>가 쓰일 당시에는 그들에 대한 그런 잣대가 당연했을 것이다. 또, 그 풍자하는 글귀나 지혜에 대한 예찬은 지금 봐도 크게 배울 점들이 많다. 하지만 그게 어찌 되었든, 이성과 비이성,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에서 다수가 보는 세상이 정상이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보는 것이 비정상적인 시각이 될 순 없다. 모두의 이데아가 동일 할 수는 없다.


'원래 그런 거야, 남들을 봐, 이게 맞아, 다들 그러잖아.'는 각자의 세상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광기의 역사 속에서 세상은 발전한다. 결국은 다른 시각, 특별한 이데아가 이 시대를 이끌어 가고 있다.


- 바다로 내몰려 그들이 본 세상을 거부하거나 인정받지 못했음에 좌절해야 했던 수많은 바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