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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빛들(2010~11)

긴장된 침묵, 연극적인 연극 <조용한 식탁>

긴장된 침묵, 연극적인 연극 <조용한 식탁>

http://our_colors.blog.me/110102813519

 

공연 제목 : 조용한 식탁

관람기간 : 2011.2.15 (화) - 2.27 (일) / 화수목금 8시, 토 3시6시, 일 4시

관람료 : 20,000원

공연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3관

지난해 7월,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연극 <조용한 식탁> 보았다. 벌써 반년이 지났지만, 공연에 대한 기억은 뚜렷하다.

'절제''고요함'.

공연을 보다가 내 손목에 있던 시계의 초침소리가 들릴 만큼 바짝 긴장된 침묵을 담고 있던 연극이었다. 이 연극의 주제를 가장 힘있게 전달하는 연극적인 장치는 바로 침묵이다. 무대 위의 그 누구도 발설할 수 없는 '그날의 사건'을 두고 3명의 등장인물, 아들과 아버지 그리고 여인은 각자의 관점에서 들려주는 독백과 사이사이 침묵을 통해 이야기를 전한다. 관객들은 그들이 풀어내는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날을 그릴 수 있게 된다. 등장인물 모두가 공유하는 15년 전의 그날 밤에 대한 이야기는 3명의 목소리로 나뉘어 들려오지만, 세 사람이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 사건은 '하나'로 맞추어진다. 이런 독특한 구조는 적은 배우와 한정된 공간과 자칫 신파적일 수 있는 소재를 정말 깔끔히 절제하여 풀어냈다는 평가에 걸맞는다.

 

 



2010년 7월 공연의 리뷰라면 아무렇지 않게 줄거리를 적어내려 가겠지만, 이 공연은 올해 다시 201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기금지원 선정작이 되어 2월 15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3관에서 만날 수 있다. 연극적이어서 참 재밌다, 라고 생각하며 공연장을 나섰었는데 다시 만날 수 있게 되니 반가울 뿐이다.

연극적인 작·연출 말고도, 이 공연이 내게 크게 기억이 남은 이유는 사람 간에 관계에 대해 쌉싸래한 부분을 너무 어렵지 않게, 하지만 조용하고 강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들이 차츰차츰 조각을 맞추어가는 '15년 전 그날 밤'은 등장인물 세 사람 간의 관계를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윤리적으로 공유해서는 안 되는 것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어 그 사건에 대해 지적을 하지 못한다. 누가 누구에게 따져야 하는지도 판단할 수 없을뿐더러, 판단하려는 순간 그 문제가 노출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독백과 침묵의 사이사이 오고 가는 세 사람의 대화는 정말 의례적이고 어색하다. 마치 옷가게 점원이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방긋 웃는 얼굴로 '손님, 정말 잘 어울리세요' 라고 하는 것처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연락해, 밥 한 번 먹자'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의례적인 말에 물들어 있다. 타인들과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지만 그건 '소통'과 '이해'가 배제된 채 그저 소리만이 오고 가는 것뿐이다. 심지어 많은 사람은 그 소리에는 무게가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니겠느냐며 또다시 형식적인 언어를 내뱉으며 사는 것이다. <조용한 식탁>은 그 사실을 짚어주고 있다. 극 중에서도 등장인물들은 겉으로 멀쩡한 식사를 유지하기 위해 '차가 밀리더라' 라는 이야기로 몇 차례고 어긋난 대화를 이어나가려 한다. 예의 바르고도 불편한 관계 속에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15년 전 그날 밤'을 덮어두고, 오늘의 저녁 식사를 어떻게서든 마무리 지으려는 것이다.

진심을 담은 말이 어색하고, 진실을 고백할 용기도 사라져가는 요즘, 한 겹 가면의 무게가 얼마나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인지 보여주는 연극이다.

<조용한 식탁>의 세 인물의 바람과는 다르게, 저녁 식사가 주요리에서 디저트로 향해갈 수록 모두가 감추고 있는 '그날 밤'은 점점 선명해져 간다. 여인과 남자와 아버지는, 불안감에 나이프와 포크 소리만 남기고 입을 다물어 버린다. 달그락 달그락 소리 사이에 다소 뻑뻑한 침묵이 만들어진다. 이 침묵을 지켜보던 관객들도 모두 긴장한 채 소리를 죽여야만 했다. 마치, 관객이 '꼴깍' 소리라도 냈다간 세 배우의 고개가 나로 향할 것만 같은 극도의 예민한 고요함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이 부분에서 드러났다. 배우의 모든 동작은 절제되어 있었고, 후춧가루를 뿌리는 동작마저도 순서와 규칙 즉, 계산이 들어가 있었다. 치밀하고 섬세한 연기로 그 극 전체의 긴장감을 유지한 것 같다.

극이 결말을 향해 가면서 각자의 마음속에선 '나'가 아닌 '남'을 탓하기 위해 나를 변명하기 시작한다. 치사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란 생각과 동시에, '나라면 과연 솔직해질 수 있을까, 저 사람들과 같이 말하고 덮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두고 실제의 일인 양 고민하게 하는 것이 이 연극의 매력이다.

빛.들 2호에서 추천하는 공연으로 도장 쾅! (내 맘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