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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정리

떠들지 않고는 못 배길 밤인데,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일기장이니 헤매고 헤매다 여기를 정리했다. 일전에 빛들에서 썼던 글들만 옮겨뒀는데, 문득 지금이 이 블로그를 살릴 기회인가 싶어서, 왔다. 블로그라는게 참 신기하다. 한 것도 없이 이곳저곳 눌렀다가 바꿨다가 하다보니 시간이 후딱 갔다. 저녁에 급히 먹다 얹혔던 라면도 내려간 것 같다. 허기를 느끼고 나니 더 외로운 밤이다.

 

엊그제는 우겨넣은 갖가지 것들로 꽉 차있던 책장을 정리했다. 드디어 전공책과 시사잡지를 버렸고, 쟁여뒀던 포스터들과 스크랩해뒀던 자료들을 미련없이 버렸다. 예전에도 몇 번이고 버리려고 했지만, 아쉬운 마음에 쓰레기통에서 꺼내 온 적도 있다. 질끈 눈을 감고서 -에잇, 버려야지- 하고 비장하게 마음먹어야 버릴 줄 알았는데, 그 사이 시간이 흘렀는지 훌훌 내 손이 아낌없이 놔주더라. 내가 했던 거고, 다신 없을 추억이고,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로 보관해두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꽁꽁 쟁여두었던 건데... 쌓인 먼지들 때문에 기침이 절로 나왔다. 켈록거리면서 너무 오래 묵혀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이것들이 의미를 가지고 하나의 지표의 역할을 할 때가 지나간 거겠지.

 

손 닿기 가장 편한 칸에 사두고선 읽지 못했던 책 몇 권과, 다이어리와, 가계부와, .... OPIc 책을 꽂으면서 -졸업을 앞뒀으니까- 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우스웠다. 잘못된 것도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지만, 그냥 우스웠다.

 

그러다가 얼결에 휴학을 하고, 프라하행을 말아먹고, 집에서 사고뭉치가 되고, 매일 알바만 하고선 하릴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다가, 급 변경된 프라하행에 버둥거리는는 내가, 창피했다. 심란하다고 스도쿠하고, 아무 책이나 깔짝깔짝 읽고, 예능 다운받아보면서 낄낄대다가, 졸려서 하품이나 했던 어제까지의 나. -쉬어본 적 없으니까, 이렇게 시간을 막 써본 적 없으니까- 하면서 변명해보려다가도 그렇다고 내가 정말로 미친듯이 최선을 다해 열심내 본 적도 없는 것 같아서 이내 쩝, 한심해 한다.

 

다시, 정리-

 

내가 아껴오던 프로필은 그 시절의 빛을 잃었고, 시간이 흐른만큼 내놓아야할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머리만 굴리고 몸은 둔한 내 기질을 인정해도, 이건 너무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 하.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아.이.고.

프라하나 가자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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