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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빛들(2010~11)

<롤라 런(1998)> - 뛰어, 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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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 런(1998)> - 뛰어, 롤라!

독일영화다. 유럽영화라고 뻔한 예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상당히 신선하고 이색적이다,라고 진부한 소개를 붙이기엔 정말 신선하고 이색적이다.

(솔직하자면, 소개하고 싶은 영화, 재밌게 본 영화는 덧붙여 설명하고 싶지 않다. "그냥 봐! 재밌어!" 라고 영화 앞에 떠밀고 싶은 게 사실이다. 왜? 말 길게 할 필요 없이, 정말 재밌으니까-)

영화 내내, 여자 주인공 '롤라'는 뛴다. 쉼없이 뛰고 또 뛴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인해 앞으로 20분 후 12시 정각에 죽을 수도 있는 남자친구를 위해 롤라는 베를린 거리를 끊임없이 달린다. 20분 내에 10만마르크를 구해 남자친구에게 가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롤라는 거침없다.

초반부터 달리기만 하는 이 영화는 단순한 액션 영화이기를 거부한다. 톰 티크베어 감독의 감각적인 영상미와 소재, 주제를 툭툭 던지는 센스는 이 영화의 격을 높여준다. 위트있는 애니메이션의 삽입과 컴퓨터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들은 유치함은 쏙 뺀 채 낄낄-거리는 동시에 감탄을 하게 만든다. 화면 분할에서 느껴지는 동시성, 색을 통한 강조나 인물들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카메라의 위치, 의도적인 인물의 확대 혹은 무시 또한 의식해서 감상하면 더욱 좋겠다. 고맙게도 영화의 배경음악이 의식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준다.

 

감독은 이런 감각적인 표현 속에서 너무 무겁지 않게 중요한 몇 가지들을 고민하게 한다. 3번의 기회(스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히는 언급하지 않겠다)를 얻은 롤라를 통해 우리는 시간에 관해, 선택에 관해, 운명에 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그 때 만약 이랬더라면-'이라며 돌리지 못하는 시간을 아쉬워하고 놓친 기회들을 아쉬워한다. 톰 티크베어 감독은 되묻는다. '그럼 만약 그 때 그랬면 이 후는 어떻게 변했을까?, 만족스러울까?' 하나 더, '너의 또 다른 선택이 다른 사람들의 운명에 끼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롤라는 노력한다. 선택을 바꿔가며 더 나은,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달린다. 영화는 그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과연 세상사가, 그네들이 그렇게 한탄하는 인생사가 그렇게 치열함과 행복 사이에 정비례의 관계를 가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따져 진짜 행복을 얻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최선이라 믿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시원시원한 영화를 보고나서 감상적이 되기는 싫은데, 빠르고 숨가쁘게 흘러간 80분의 시간 끝에 밀려오는 약간의 허무함은 이 영화가 어쩌면 그 설정컷들처럼 정말 게임이었구나-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강추!'하는 이유는 가벼움과 진지함을 이렇게 잘 버무려낸 액션영화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액션영화를 보고나서 이 장르가 주는 통쾌함과 시원함을 느껴놓고는 '어쩌면 이건 액션영화가 아닐지도 몰라'라고 생각이 들게하는 영화도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진지함 속에서 가벼움을 찾자면 이처럼 어이없고 둔탁한 영화도 없을 것이다. 장르의 가벼움을 전제로 이 영화의 감각적인 면들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럼 당신도 누군가에게 지금의 글처럼 말하고 싶지 않을까. "그냥 봐!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