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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빛들(2010~11)

누구나 간직하는 '그 방' 이야기, 연극 <누가 살던 방>

http://our_colors.blog.me/110117069012

 

공연 제목 : 누가 살던 방 -극단 민예 146회 정기 공연-

관람기간 : 2011.8.5 (금) - 9.11 (일) / 화수목금 8시, 토 3시6시, 일 4시

관람료 : 30,000원

공연 장소 : 한성아트홀 1관





모든 방에는 색이 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등의색깔이 아니라, 방 나름의 역사가 만들어낸 흔적들이 쌓여 칠해진 색이 있다. 흔적의색은 꼭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건 그 방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어느 위치에서 얼마나 오래있었는지 보다는 그 방에서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띄게 된다.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서,라... 방의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쓸쓸한 일이다. 그 방에 머무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바뀔 것이고 벽에 못자국은 늘어갈것이고 어딘가 마모되고 낡아갈테지만, 사람은 떠나고 흔적만 남는다. 그리고 그것이 방의 색이 된다.

여기 켜켜이 쌓인 흔적을 기억하는 방의 이야기가 있다. 연극 <누가 살던 방>.




산자락 어딘가에 위치한 반 지하방을 찾아오는, 또 살아가고떠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실제 우리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극 중 인물들처럼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들은 방을 구하면서크게 다투기도 하고, 반대로 사랑내를 풍기며 새출발을 다짐하기도 한다.버거운 서울살이를 하는 이들은 옥탑방과 고시원, 하숙집,언덕 위의 집 등을 전전하며 그저 몸 누일 방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또 누구나 우리 집, 내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른이되어서는 내 집, 내 공간을 장만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긴다. 그러니까…… 이 연극은 우리 얘기다. ‘내 방이야기.

연극 속 그 방은창문의 그림자를 따라 30년 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자신이 품었던 사람들을 보여준다. 서울 와서 처음 우리집을가진 한 가족의 오래 된 이야기와 현재 그 방을 중개하고 있는 부동산 중개인이 큰 중심 인물이다. 밤마다귀신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이 방은 중개인에게는 골칫덩어리이지만, 더불어 교차되는 가족의 사연 속에선 가장 행복했던곳, 그러면서도 가장 슬펐던 곳이 바로 이 방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가족의 절절한 사연 뒤로하고,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사람이 있다. 40대의 트렌스젠더 '영희'


극 중 그의 등장은, 아니 그녀의 등장은 웃기기만 하다. 남자배우의 치마행색과 그 목소리와 몸동작이 관객으로서는 웃긴 게 당연하다. 얼굴이 거무튀튀해서 핑크가 잘 어울린다 말하는 그녀는, 지금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 때는 예쁘고 아름다운 마담이었던 그녀이지만 지금은 비싼 주사대신 거뭇거뭇 수염을 기르며 산자락 끝 방에 혼자 살고 있다. '내가 나인 게 죄라면 나는 내가 아니어야 하나'... 내가 나이기 위해서 택한 영희의 그 방은 안식처이자 외로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외형은 뭇 남성이지만 가만보면 영희의 감성은 천상여자다. 그 방에 유일하게 출입할 수 있는 세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영희는 세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울고 웃고, 그러다가도 세윤이 두는 거리감을 이해하고 괜찮다 말하는, 외로운 여자다.

"(영희)밤에 혼자 앉아 옷 만들면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사방은 고요하고. 그럴 땐 방이 꼭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아 "

"(세윤)방이 뭐래?"

"...... 차가워져라. 차가워져라. 안 그러면 미친다."

"방이 무슨 냉장고야?"

"하긴 밤에 혼자있으면 웅웅- 냉장고 우는 소리밖에 안 들리니까"

(처음 이 텍스트를 읽었을 때는 절로 탄성을 질렀다. 세윤과 영희가 적어도 네댓번은 둘러하는 대화이지만, 영희의 서운하지만 사랑하고 또 세윤의 애틋하지만 미안한 두 사람의 무게가 정말로 적당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이다.)


방은 어쩌면 정말로 영희에게 그렇게 말했을 지도 모른다. 도우미가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도록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또 새로운 시작을 하는 중개인에게 눈을 선물한 것처럼 말이다. 방은 자신이 낡아져도, 또 누군가가 머물다 떠나도, 끊임없이 사람을 품고 싶어 한다. 빈 방은 먼지가 쌓이고 거미줄만 남기 때문이다. 사람이 남긴 흔적을 모아 자신의 색을 만들고 그 빛이 바래 허물어지는 순간까지, 그 방은 계속해서 '누가 살던 방'이 되어 방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극장을 뒤로한 채 나서는 걸음마다 여운이 깊게 남는 연극이다. 많이들 관극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