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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빛들(2010~11)

지독한 고독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희곡 이야기


베르나리 콜테스 작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세계문학전집 124 콜테스 /민음사 : 81p~141p 137~141p

난 바로 움직이지는 않았어, 일단, 흥분하지 말자, 벤치 위에 앉아서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자, 난 주윌 둘러보았고, 그게 다였지만, 좀 나아졌어, 내 등 뒤로 멀리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고, 복도 저쪽 끝에선 거지가 구걸하고 있었어, (오케이, 친구, 하지만 일단은 움직이지 말자), 정면에, 반대편 승강장에는, 온통 노란 옷만 입은 미친 노파가 날 보고 웃으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어, (눈도 잘 보이고, 귀도 잘 들리고, 다 멀쩡한 것 같군), 위쪽 난간에서는 어떤 아줌마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고 있었어, (난 생각했지, 친구, 절대로 흥분하지마), 그리고 내 앞에서, 난 똑똑히 봤어, 머리가 등까지 내려오는, 잠옷을 입은 계집애가 주먹을 꽉 쥐고 내 앞을 지나가고 있었어, 하얀 잠옷을 입고, 그런데 바로 내 앞에서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질질 짜기 시작하는 거야, 그 앤 그렇게 헝클어진 머리에, 주먹은 꽉 쥐고, 잠옷을 입은 채로, 승강장 끝까지 걸어갔어, 갑자기 난 모든 게 지긋지긋해졌어, 이번엔 정말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 난 넌더리가 났어, 이 세상 전체가, 각자 한 구석에 자기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꼬락서니가, 이 모든 것들을 견딜 수가 없었어, 다 두들겨 패고 싶었어, 혼자서 뭔가를 부르고 있는 아랍 놈도, 두들겨 패고 싶었어, 내 등 뒤에, 저 복도 끝에 있는 거지도, 맞은편의 미친 노파도, 그 꼬락서니들이, 이 모든 난장판이 지긋지긋해졌어, 역 반대편 끝에서 계속 질질 짜고 있는 잠옷 입은 계집애도, 패버리고 싶었어, 난 두들겨 패고 싶었어, 늙은이들, 아랍 놈들, 거지들, 타일 붙인 벽들, 지하철 열차들, 검표원들, 짭새들, 죄다 부숴버리고 싶었어, 자판기들, 벽보들, 불빛들, 빌어먹을 냄새, 빌어먹을 소음, 난 이미 마신 맥주를, 배가 꽉 차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또 마실 맥주를 생각했어, 친구, 모든 게 끝날 때까지, 모든 게 멈출 때까지, 죄다 박살내고 싶은 욕망을 끌어안고 앉아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게 정말로 멈추더군, 지하철도 더 다니지 않고, 아랍 놈도 입을 다물고, 위쪽의 아줌마도 숨을 멈추고, 잠옷 입은 계집애도 더 이상 훌쩍거리지 않았어, 갑자기 모든 게 멈춘 거야, 오직 음악만이 멀리서 들려오고 있었어, 미친 노파가 입을 열더니 끔찍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기 시작했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거지가 저쪽에서 연주를 했지, 여자는 또 거기에 맞춰 노랠 불렀어, 둘은 마치 준비라도 해 온 것처럼 서로 화답하고 화음을 맞췄어 (오페라의 한 대목인지, 뭐 그런 종류의 헛소리였는데 정말 끔찍한 음악이었지), 둘의 합주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다른 모든 게 다 멈춰버리고 노란 옷 입은 노파의 목소리만 역 안에 가득했지, 난 생각했어, 오케이, 이제 일어나서 역을 가로질러 뛰어가자, 계단을 올라가서 지하를 벗어나자, 밖으로 나와서도 난 뛰었어, 여전히 맥주 생각을 하면서, 난 달렸어, 맥주, 맥주, 또 생각했어, 정말 개판이군, 오페라 장단, 여자들, 차가운 땅바닥, 잠옷 입은 계집애, 창녀들, 묘지, 난 달렸고 아무 감각도 없었어, 난 이런 난장판 속에서 풀밭 같은 것을 찾으려 했어, 비둘기들이 숲 위로 날아오르면 병사들이 총을 쏘고, 거지들이 구걸을 하고, 쫙 빼입은 건달들은 쥐새끼들을 사냥하고, 난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아랍인들끼리만 아는 비밀 노래를 상상하고, 그러다 널 발견해서 네 팔을 잡았어, 난 정말 방을 원하고 난 흠뻑 젖었어, 마마 마마 마마, 아무 말도 하지 마, 움직이지도 마, 난 넌 바라볼래, 널 사랑해, 친구, 친구, 난 이 난장판 속에서 천사 같은 누군가를 찾아 헤맸어, 그리고 네가 여기 있어, 널 사랑해, 그리고 남은 건, 맥주, 맥주, 난 어떻게 이 얘기를 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어, 이런 개판, 이런 쓰레기 같은 세상, 친구, 그리고 언제나 비, , ,

-END-


 

 

한 호흡으로 줄줄이 이어진 대사가 끝나고 나서야 이 대본은 끝이 난다. ,로 이어진 한 문장의 대사는 60페이지(90)를 넘기도록 주인공 가 뱉어낸 지독히 외로운 독백이다. -친구(관객)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지만 결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떠들고 있을 뿐이다.

 

 

로맹 뒤리스 (1975년생)

http://videos.arte.tv/fr/videos/romain_duris_au_theatre-3668698.html/fr/videos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2011 공연 소개 영상 – 로맹 뒤리스 중심, 자세히는 아니지만 연출방식도 볼 수 있음

일반적으로, 대본이나 희곡을 읽다보면 무대에서 어떻게 보여질지 지문이나 해설이 도움을 준다. 하지만 베르나리 콜테스의 작품들은 이러한 도움들이 없다. 지문이나 해설 없이 그냥 한 편의 소설과 같아서 읽을 수록 과연 실제로 공연된다면 어떻게 그려질까, 보고싶다란 욕구가 강하게 치민다. 국내에서는 만나기 힘든 작품이지만, 올해 1월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3개월동안 작가 콜테스의 친구인 연출자 파트리스 쉐로에 의해 이 작품이 공연되었다. 전세계 초연은 아니지만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La nuit juste avant les forets>을 이렇게 장기간 공연한 적은 없었다. 내용이 쉽지 않은 부조리극임에도 불구하고 3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대극장이 매일같이 관객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작가 콜테스와 연출자 파트리스 쉐로, 그리고 배우 로맹 뒤리스의 완벽한 조합이 불러온 힘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명성이야 당연하고, 사실 파트리스 쉐로 연출가는 콜테스의 친구로서 그의 작품을 여러번 무대에 올렸고, 늘 뛰어난 연출을 보여주었다. 이번 공연에서 그 두 사람에 대한 신뢰에 더해진 신선한 조합은 배우 로맹 뒤리스이다. 90분간 혼자서 무대를 이끌어간다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의 에너지를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뛰어난 배우로서의 자질이 필요하다. 로맹 뒤리스는 프랑스에서는 출중한 외모만큼 뛰어난 연기력으로 사랑받고 있는 연기파 국민 배우이다 -한국에서는 영화 <추방된 사람들(2004)>, <사랑을 부르는 파리(2008)>에서 얼굴을 알렸다-.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가 무대로 왔으니 사람들의 기대는 대단했고, 놀랍게도 그는 그 모든 기대에 부응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공연을 보고싶다는 목마름은 여전하다. 텍스트 자체만으로도 충족되는 공감들이 무대에서 기대 이상으로 펼쳐지길 바라는 관객으로서의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완벽함은 콜테스의 일생이 만들어낸 불운이자 행운의 결과이다.

프랑스 1980년대 작가인 콜테스는 사춘기 이후 극심한 혼란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다 짧은 생을 살다간다. 사실 그는 그 시절 프랑스 내외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큰 충격을 받고, 이 세상이 닫혀있음에 좌절을 느끼며 자랐다. 프랑스 국민으로서 이방인의 감정을 느낀 그는 비서양권이나, 타국을 여행하면서 지금 이곳(프랑스)의 문화나 사회가 아닌 흑인과 동성애, 레게 등 주변-타인-외부인에 관심을 가졌다. 콜테스는 자신의 작품들에 주변인으로서의 외로움과 자신이 고통 받았던 소외와 단절, 불균형에 대한 고찰과 문학적 감수성을 예리하게 엮어내었다. 그는 현대 사회의 첨예한 전쟁, 차별, 억압, 소외, 고독 등의 문제들을 단순히 현상관찰이 아닌 호소력 짙은 문학들로 남겨 과거에도, 지금도 그의 문학을 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어놓고 있다.

 

거칠고 예리한 문학과는 다르게 콜테스는 부드러운 외모를 가졌다.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은 상당히 사회 비판적이기도 하고, 스토리도 한번에 읽히지도 않고,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 건지도 파악할 수 없는 희곡이었지만 독특한 성격이 분명했기 때문에 재밌게 읽을수 있었다. 한 문장의 독백극 속에서 주인공 가 붙잡고 떠드는 -친구(관객)쓰레기 같고 이런 개판같은 세상 속에 비를 맞으며 이 거리를 헤매는 에게 절실하고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는 쉴 새 없이 끊어지고 또 반복되는 거친 호흡의 말을 내뱉으면서 자신의 주변인, 이방인 인생에 대해서 절망하고 또 한편으로는 강하게 반항한다. 자신이 그에 맞서 싸우고 있음을 끊임없이 에게 상기시키며 또 함께 해야한다고 설득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 큰 힘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불안한 정서로 바들바들 떨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투쟁하는 ’는 이야기를 들어줄 를 붙들고 유일한 위안을 느끼고 싶어한다. 연약한 모습으로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 말은 되려 그를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싸우곘다는 말을 내뱉는 의지리라. 그가 할 수 있는 싸운다는 것은 투쟁 정도의 그것이 아니다. 그저 이 비오는 밤, 거리를 헤매이며 포기하지 않고 몸을 녹일 방을 찾아 헤매이는 것이 전부이다.

이 일방적인 대화가 너무 절실하게 느껴져서 꼭 들어줘야만 하는 기분이 든다. 무대를 상상해보면 각색하지 않는 이상 1인극일테고 주인공 는 보이지 않는 에게 (결국 관객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어쩌면 존재조차 불확실한 타인을 친구라 부르며 자신만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어쩌면 는 주인공 의 고독과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의 욕망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들에 의해 끝없이 추방당하는 이 생활을 멈추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떠돌고 있는 이 길 위에서 잠시, 아주 잠시 떠나 안정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의 방-을 꿈구고 있다. 그곳은 가 꿈꾸는 일종의 낙원이고 모태와 같은 곳이지만 꿈 속에 존재하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이데아이며, 안타깝게도 주인공은 언제나 그 바로 앞에서, 야만적인 밤의 어둠 속에서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고만 있다. 절망스러운 상황을 깨고 싶다고 애원하는 모습을 안쓰럽도록 담아내지만 결코 깰 수 없음도 동시에 담아내고 있는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은 우리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오는 고독을 느끼게 한다.

여기서 주인공 '나'가 절실히 부르는 마마의 존재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다리 위에서 우연찮게 만나 하룻밤 사이에 주인공 를 흔들어 놓은 마마는 (‘가 극 중에서 말하지만, 마마는 사실 이름이 마마가 아닐수도 있다) ‘가 잡을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며, 나를 통째로 흔들어 놓고서는 훌쩍 떠난다. ‘는 마마를 다시 한 번 얼굴만이라도 보기 위해 서른한개의 수로에 몇 일동안 마마 사랑해, 마마 돌아와를 다리 한가득 써놓는다. 하지만 마마는 오지 않고, ‘에게 마마는 그리운 존재로, 보고싶은 존재로 새기게 된다. 이 감정은 잠시 다른 죽은 여자 이야기를 하면서 묻혀지지만 엔딩에서 ‘마마, 마마 마마, 아무 말도 하지 마, 움직이지도 마, 난 널 바라볼래, 널 사랑해,’라고 툭, 그 마음을 던져 놓는다. ‘마마’는 끊임없이 말을 건네기만 하는 ‘나’에게 먼저 말을 건 존재이며 하룻밤을 다리 위에서 보낸 위안의 존재이다. ‘나’의 방이자 숲이 될 뻔했던 ‘마마’는 어쩌면 ‘나’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단 한 번의 이상향이 되어 희망과 동시에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길고도 긴 한 문장 안에 담긴 지독한 외로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