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빛들(2010~11)

토닥토닥 희망 뮤지컬 <빨래>

http://our_colors.blog.me/110101642469

 

섭섭하다. 요즘 대학로에서 공연을 올리고 있는 작품들을 쭈욱 훑어보니 웃기거나, 야하거나, 둘 다 적당히 섞인 로맨틱 코미디거나... 유재하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처럼 듣는 것만으로도 외롭던 마음이 위로받게 되는 공연은 없는 걸까.

공연은 배우와 관객이 시간을 공유한다.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한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공감과 소통의 코드는 꼭 웃기거나 야한것만 있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래서 인터넷 말로 '훈훈돋는' 마음 따뜻한 뮤지컬 하나를 소개한다. 사실 2005년 초연을 시작으로 여태껏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뮤지컬이라, 이제와 소개하기 어색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런 웰 메이드 창작 뮤지컬은 흔치 않으니까.

뮤지컬 빨래는, 몽골과 강원도에는 없는 옥탑방과 지하방이 존재하는 못난 서울이 배경이다. 이 모난 서울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상처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내는 이야기.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 솔롱고와 강원도에서 올라와 일과 사람에 치여가며 20대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영이가 주인공이다.

그 밖에도 40살 된 장애인 딸과 함께 살아가는 할머니, 동대문에서 일하는 과부 아줌마와 같은 많은 것들을 참아야 하는 사람들, 버텨내야 하는 사람들이 이 뮤지컬엔 등장한다. 그들의 삶은 뻑뻑하고 어딘가가 어긋나 있는 것만 같다. 요즘 소위 말하는 스펙을 놓고 따지자면 이 뮤지컬의 주인공들은 백지의 이력서를 쥐고 있는 셈이다.

그 공연을 보는 관객들 중 다수는 실제로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른다. 겪어 본 적도 없고, 눈으로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어디서 들어 봤거나, 머리로만 상상해 봤을 뿐이겠지. 실제로 이렇게 사는 사람들의 삶은 (죄송하지만) 속된 말로 참 지지리 궁상 같은 삶들이다. 돈이나 명예를 기준으로 성공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을 나누는 지금 우리네 기준에서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되려 그들의 삶을 보면서 위로를 얻는다. 나보다 못난 사람들을 통해 얻는 이기적인 자존감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우리 관객들에게 이 뮤지컬 속 궁상맞은 인물들이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뮤지컬 빨래에서는.. 약해지면 안 되는 사회여서, 스스로가 이 악물고 버티는 지도 모르고 바쁘게 살아가느라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방법을 까먹어버린 우리에게 찡긋 윙크를 한다. 정말, 당신이 더 잘 살고 있는 삶이 맞아? 하고.

공연 속 주인공들은, 울고 크게 외치고 함께 웃고 또.. 빨래를 한다. 스스로를 다독거려 가며 살아가는 법을 아는 것이다. 힘들면 크게 소리 내서 울고, 힘내기 위해서 "난 지치지 않을 거야!!"라고 크게 외치고, 사람들과 정을 나누면서 말이다. 또 제목처럼 뮤지컬 속 인물들은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린다'.

상처를 볼 틈도 없이 바쁜 우리들에게, 혹여 상처를 알아도 그저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것은 치료해야할 상처야'라고 콕 찝어주는 뮤지컬이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도 상당히 씩씩하게 제시한다.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빨래 하듯 스스로가 털어내고 깨끗하게 빨아내라는 격려를 한다. 이적의 최근 앨범에서도 빨래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뮤지컬과 그 노래의 분위기는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빨래'라는 상징이 혹은 실제로 그 행위가 우리의 마음의 얼룩을 지우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깨끗해지도록 직접 빡빡 문지르고 비벼대면서 내일 걸칠 미래를 다듬어가는 것이 '빨래'이다.

20대로 산다는 것, 여성으로 산다는 것, 외국인 노동자로 산다는 것, 노인으로 산다는 것, 서울생활을 하며 산다는 것, 등.

부단히도 외롭고 고단할 그네들의 삶을 이 뮤지컬은 유쾌하게 풀어낸다. 아직도 살아갈 힘이 있고 사랑할 힘이 있는 자신들이기 때문에 힘내서 또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 뮤지컬은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에 희망을 가져와야 한다고 노래한다. 공연 대사 중에 정말 듣기 싫은 목소리로 '언니~ 좀 참지 그랬어요'라고 동료직원이 말하는 순간이 있다. 참는다,에 대해서 뮤지컬 빨래에서는 강하게 부정한다. 참다보니 타인들이 자신도 사람임을 잊어버리거나, 나 스스로도 꿈을 잃게 되었다며 자신을 위한 삶은 결코 참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 한다.

이런 주체적이고 씩씩한 희망은 우리 사회에서 누가 말로도 전해주지 않는 이야기이다. 어쩔 수 없음을 이야기하며 남들 다 사는 대로, 치이면 치이는 대로 사는게 미덕이라고 여기는 세상이다. 혹은 강해보이기 위해 내가 지금 불편한 어딘가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조차 두려워하는게 사실이다.

울어도 된다, 울고선 힘내, 라고 이야기해주는 이 공연이 예쁘지 않은가. 그리고 고맙지 않은가.

 

이런 감성적인 접근 외에도 뮤지컬 그 자체로도 짜임새 있는 웰메이드 공연이다. 뮤지컬로써, 노래들도 좋고, 현 관객들이 요구하는 감동과 재미가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관객들과 특유의 호흡을 만들어 가는 것도 뮤지컬 빨래의 자랑이다. 배우와 함께하는 씬이 몇 개 있어서, 그 씬에 해당하는 특정 좌석도 있다. 그런 재미를 즐기는 관객들은 예매할 때 참고해도 좋다. 뿐만 아니라 아예 극 중에 자연스럽게 팬 사인회를 진행하기도 하고, 공연을 마친 후에도 통로에 배우들이 일렬로 서서 인사하는 참 예의바른 공연이다.

여러모로 공연장을 나서는 발걸음을 통통 튀게하는 명랑한 공연인 것 같다.

안타까운 소식이자 반가운 소식은, 지난해부터 뮤지컬 빨래는 대학로 학전그린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2011년 1월 9일에 7차 팀을 끝으로 투어 프로덕션 공연 (2월 28일부터 시작)을 준비하게 되었다. 지방 사는 분들에겐 반가운 소식일 듯 싶다. 안타깝게도 지금 빨래를 서울에서는 만나 볼 수는 없지만 올 3월! 8차 팀을 기대하시라. 짜잔하고 돌아 올 것이다. 당신을 토닥토닥 위로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