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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빛들(2010~11)

<The Author> 디오써 : '보는 것'에 대한 고민

 

http://our_colors.blog.me/110108763028

 

 

공연 제목 : The Author 디오써 -두산아트센터 2011년 경계인 시리즈 1

관람기간 : 2011.4.26 (수) - 5.28 (토) / 화수목금 8시, 토 3시7시, 일 3시

관람료 : 30,000원

공연 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 111

 

 

 

'당신은 연극을 왜 보십니까'


많은 이들이, 공연이 시작하기 직전 객석과 무대가 어두워지고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그 순간에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잠시동안 펼쳐질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현실과 다른 무대에 대한 동경, 또 안전한 공간에서 색다른 시간을 체험한다는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요즘의 관객들은 그 찰나에 만족하고 만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등이 밝아지면 사람들은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켜며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서둘러 일어선다. 재밌었다, 별로였다, 등의 짧은 평과 함께 그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영화관에서는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고, 극장에서는 관객이 다 나갈 때까지 앉아 있어보라는 지인 분의 조언 덕에, 어디서든 가장 늦게 나가는 관객인 나는 그 빈 공간에서 밀려오는 허무함과 외로움을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방금 무대에서 보았던 이야기, 삶과 멀어지고 싶지 않은데, 밀려 밀려 현실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묻게 되는 질문, '나는 왜 이것을 보는 걸까'


 

 

5월10일 3시 <The Author 디오써>를 관극하기 위해 객석입장을 하다가 주춤, 당황했다. 사방은 빨간 무대막으로 둘려 있고, 조명도 많아 보였다. 하지만 가득 준비한 무대 위에 객석 의자가 가득 놓여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무대가 없었다. 다른 관객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했지만, 이내 금방 극장 내 분위기는 앞으로 진행될 극에 대한 유쾌한 기대감이 느껴졌다.



<The Author 디오써>는 '파볼'이라는 작품을 쓴 작가와 그 연극의 주인공 역할을 맡은 두 남녀 배우, 그리고 '파볼'을 관극한 한 관객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The Author 디오써>에 나오는 가상의 극 '파볼'은 사회의 한 폭력을 조명한 작품으로, 전쟁 참전에 반대하는 태도에서 '모르는 척 덮어가려는 폭력에 대한 존재를 드러내고자' 극 중 작가가 쓴 극으로 소개된다. 파볼의 작업과정은 상당히 거칠고 사실적이고 어려웠다. 연습을 위해 잔혹한 인질 테러 동영상을 열댓 번이나 반복해서 봤다는 여배우는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학대하는 역할을 맡았던 남자배우는 일상에서조차 폭력성을 주체하지 못해 관객을 구타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파볼'이 가지고 있는 폭력에 대한 메시지가 <The Author 디오써>의 전부가 아니다. 디오써는 다양한 측면에서 '연극'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파볼이라는 극 중 극을 통해서 실제로 연극을 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창작자들과 관객의 입장을 풀어가려고도 하지만, 더욱 더 깊게 "그래서 연극을 왜 하는가, 연극을 왜 보는가"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으며, 무대 위에 노출된 실제 우리 관객들에게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왜 '보는' 행위를 하는가"를 쉴 새 없이 물어본다.


<The Author 디오써>는 무대가 없다고 해서 배우들이 관객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극은 아니다. 관객이 극 중에 간섭은 가능하지만, 그 간섭이 극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사실 보다 보면 관객에게 역할이 없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보는' 행위에 대해서 깨고 참여하라는 것이 아니라, '보는' 행위에 대해서 관객들이 대면하길 바라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보는 것'에 대해서 <The Author 디오써>는 다양한 쟁점들을 던진다.


첫째는 위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관극하는 관객들에게 '왜 보는가' 질문을 던졌고, 둘째는 창작자들에게 '연극에서 진정한 이미지의 재현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다. 디오써의 배우들은 객석을 벗어나 중심에 나서서 연기하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다. 뿐 아니라, 극 중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재현의 연기를 하는 장면도 없다. 이미지의 재현을 거부한다는 의도를 담아, 배우들은 쭉- 자리에 앉은 채로 독백 중심의 대사처리가 이어지는데, 듣는 행위의 현장성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더 넓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했다. '연극'이 단순히 텍스트가 무대 위에 장면으로 펼쳐지는 showing에 머물 것이 아니라, 연극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이 독특한 진행 내내 배우들은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말한다. "어떠세요?" "같은 생각이신가요?" "그래 보신 적 있으세요?" "혹시 지금 제가 얘기하는 이런 것들이 불편하신가요?" "한 번 해보시겠어요?" "계속할까요?" "누구 얘기해보실 분 없으세요?" 코믹극처럼 정답이 있는 리액션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관객들의 대답과는 무관하다는 듯 질문의 끝엔 기다리는 시간도 짧으며, 실은 친절이나 배려를 가장한 메시지라는 게 느껴지니 관객들은 사실 불편하다. 그저 나(관객)과는 별개로 극이 진행되었으면 하고, 나(관객)는 편한 의자에 기대 보면서 즐기고 싶은데, 조명은 배우뿐 아니라 나(관객)에게도 환히 비추고 있다.
극 중 관객 역을 맡은 배우는 우리 관객들에게 '보는 것'에 있어서 각성이 되는 모범의 모습을 보인다. 그는 극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연극과 관련한 모든 것을 예찬한다. 이 극장, 이 공간, 이 시간, 이 사람들, 이 작품, 이 배우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멋지다고 말하며, '보는 것'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느끼고 감동한다. 실제로 벌어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가장 안전한 공간인 '극장'에서 소비되는 이미지들을 접하고,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쟁점으로, <The Author 디오써>는 '보는 것'과 현실과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극 중 '파볼'을 보고 크게 충격과 감동을 한 관객은 남자 배우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궁금한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의도와 다르게 오해를 사서 폭력 충동의 끝에 서 있는 남자 배우에게 폭행을 당한다. 극장 문 바로 앞에서 많은 인파 속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극장 밖에서도 그 많은 사람은 다 '어둠 속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의 태도를 보였다. 폭력과 학대의 이미지는 소비되기 위해 극장에서 만들어 낸 것이지만, 그저 '보는'행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조차 하나의 이미지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극장 안은 안전하고, 간접적인 체험의 장이지만 현실과는 다르다. 경계하지 못한 채 습관처럼 '보는' 태도는 우리 현실을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보는 것'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연극 <The Author 디오써>는 실제로 많은 관객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눠보기 위해 만남의 시간을 여러 번 가졌다. 대본 첫 리딩도 공개하고, 오픈 리허설도 진행했으며, 시연회에 일반 관객도 초청하였고, 공연기간 중에는 좌담회도 열어(지난 12일) 토론 및 생각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이 연극이 좋은 이유는, 연극이 던지고 있는 고민거리를 창작자들도 깊게 공부하고 고찰하고, 대단히 적극적으로 관객들에게도 '같이 얘기해봅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오락으로서 혹은 예술로서, 뚝 떨어진 잠깐의 다른 시간과 세계가 아니라 공연 이후에도 소통할 무언가가 남아 있는 연극이기 때문에 허무함도, 외로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함께 관극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색다른 연극 <The Author 디오써>,

조금은 불편하고 어벙벙해도 '보는 것에 관해, 관객에 관해, 연극에 관해' 고민하고 싶다면 용기 있게 관극하시길!